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메레르급 전열함 (문단 편집) === 영국의 추격과 테메레르급의 개발 === 골머리를 싸매던 영국 해군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 당시 테러블과 그 동형함 인빈시블을 노획하여 그 우월성을 접한 이후 74문을 차기 3급 주력함급으로 선정하고 이를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50~60문 4급함은 점차 도태되어 많은 수가 해체되거나 [[영국 동인도 회사]]의 상선 또는 무장상선(이스트 인디아맨)으로 팔려나갔다. 다만 이들은 수심 낮은 북해 연안과 발트 해, 미 동부 연안 등 74문함이 가기 힘든 지역에서의 작전에서는 요긴하게 쓰였다. 이는 4급 정도로도 이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북유럽]] 국가들과 [[네덜란드]], 또는 [[미국]])의 해군 주력함들과 대등 이상의 전투가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이들은 프리깃으로 구성된 소함대를 이끌고 식민지를 방위하거나 도서 지역에서의 전투를 수행하기 알맞았기에 완전히 도태되지는 않았다. 반면 남은 70문 및 64문급 3급함의 운명은 이들보다 비참했다. 70문급은 74문급으로 개조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64문 3급함으로 개조되었으나 이미 기존의 64문 3급함들도 74문함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었고, 결국 1782년 건조된 크라운급 64문 3급함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64문함은 신규 건조되지 않는다.] 우선 기존의 2급 함선들이 74문급으로 축소 개조되었으며, 1745년 건함 계획으로 건조되던 더블린급 70문 3급 전열함들은 74문을 탑재할 수 있도록 조금 확대되었다. 1759년에는 프랑스의 이원화 설계 개념도 받아들여 연장형(large model)과 일반형(common model)으로 나누었으며, 노획한 인빈시블을 복제하여 첫번째 연장형 전열함인 발리언트급 3급 전열함 두 척을 건조하였다. 이 함선들은 프랑스의 대형 모델과 마찬가지로 연장된 선체위에 18파운더 대신 24파운더를 올려서 더 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테메레르급의 등장에 대항하여 마스급이 등장하기 전까지 연장형 74문함의 건조는 발리언트급 이후로 30년 가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760년에는 이후 건조될 일반형 74문급 3급함의 기본이 된 벨로나급 전열함이 취역했다. [[슬레이드 3급 74문 일반형 전열함|이후 건조된 애러건트급, 엘리자베스급 등의 함급들은 대부분 여기서 수선하 부분의 설계를 조금씩 손보는 수준에 머물렀다.]] 테메레르급은 이러한 영국의 맹렬한 추격 속에서 설계되었다. 무장은 테러블 함과 차이가 없었던 대신 함 배수량을 기존의 1750톤급에서 '''대형 모델 수준의''' 1900톤 가량으로 확 잡아늘렸다. 이는 2층 포갑판함으로써는 한계치에 다다른 수준의 배수량이었기에 다른 어떤 74문함보다 더 큰 구조적 안정성과 여유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기술적 격차를 열심히 좁혀온 영국 74문 3급함들과의 경쟁에서 다시 한 발 앞서나갈 수 있었다. 가령 1793년 건조된 테메레르급 폼페이가 영국식 적재중량톤으로 1901톤이었던 반면, 20년 후인 1812년에 건조된 일반형 3급함인 뱅거급 전열함[* 나폴레옹 전쟁 당시인 1806년부터 1812년까지 무려 '''40척'''이 건조된 74문 3급 전열함급. 설계상으론 멀쩡했지만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민간 회사에 발주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군납비리가 난무하여 내구도가 좋지 않았다. 접합부에 사용할 구리못을 빼돌리고 머리 부분에 구리 도금을 한 쇠못을 대신 박아 넣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비리 유형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의 별명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따온 '''40척의 도적들'''이었다. 열 척의 함선이 1800년대 중반에 50문급 프리깃으로 격하되었고, 4척은 부유포대로 개조되어 그 중 몇몇이 [[크림 전쟁]]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HMS 인더스의 경우 영국식 적재중량톤으로 고작 1756톤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90문 2급 전열함 나무르를 74문 3급함으로 개조하거나 테메레르급을 적극적으로 나포하기도 했고[* 물론 적 선박을 나포할 경우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다. 당시 함장의 경우 현재 금액으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액수를 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18~19세기 당시에는 적군에 나포되어 싸우는 군함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그렇기에 함선 나포가 오늘날에는 괴이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마르스급, 에이젝스급과 같은 연장형 74문급을 더 건조하거나 테메레르급을 아예 폼페이급, 아메리카급으로 베껴가기도 하며 프랑스와의 함선 체급 차이를 메꾸고자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